예천의 발자취-삼국시대

예천e희망뉴스l승인2015.04.14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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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7(눌지왕 1)

수주촌(예천읍)의 우두머리[干] 벌보벌이 신라의 고관으로 있으면서 지혜를 발휘하여 박제상(朴堤上)을 대외·고구려국(高句麗國)의 사신으로 천거하여 인질로 잡혀간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과 복호(卜好)형제를 신라로 데려오는 데 성공.

■ 400~600

송월리(하리), 대심리(예천), 향석리(용궁), 용산리(예천), 석정리(예천), 황지리(호명), 신음리(개포), 간방리(감천), 마산리(지보), 지보리(지보), 도화리(지보), 효갈리(풍양) 등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보여주는 수혈식 석곽, 횡구식 석곽, 횡혈식 석실과 같은 무덤을 남기고 있는데 모두 경주 지역의 신라 고분이나 거기에서 출토되는 유구·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음

■ 757(경덕왕 16)

겨울 12월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꿀 때 사벌주를 상주로 바꾸면서 수주군(水酒郡)을 예천군(醴泉郡)으로 개칭함. 이때 영안현(현 안동 풍산), 안인현(현 문경 동로), 가유현( 현 문경 산양), 은정현(현 상.하리면)이 예천군에 소속.

■ 8C후반

한천사 철조여래좌상(寒天寺 鐵造如來坐像, 보물 제 667호, 감천 증거)이 제작 안치.

■ 8C이후

예천동본동 석조여래입상(醴泉東本洞 石造如來立像, 보물 제 427호)이 제작 안치

■ 9C초

예천간방동 삼층석탑(醴泉澗芳洞 三層石塔)이 제작 안치.

■ 870(경문왕 10)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창기사(현 용문사, 용문내지)건립.

■ 875(헌강왕 1)

두운선사가 명봉사(상리 명봉)건립.

■ 9C중엽

한천사 삼층석탑(寒天寺 三層石塔)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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