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찬 듯 부는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높고 푸른 가을 하늘 따라 명봉사로 향했다.

 간 밤에 내린 비로 도로는 젖어 있고 길가의 나무는 울긋불긋 오색물감으로 단장이 한창이다.

 일주문을 지나 포장된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서야 명봉사에 도착했다.

 늙고 남루한 개 두 마리가 쓸데없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인다.

 “계십니까!” 큰소리로 호기를 부려보지만 묵묵부답이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경내를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산사의 풍경은 마치 동양화 한폭을 옮겨 놓은 것 같다.

 돌계단을 밟고 무량수전에 오르니 열려진 문틈으로 부처님이 보이고 주지스님의 청아한 독경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살며시 발소리를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문종대왕 태실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왠지 모를 편안함 속에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무량수전 뒤로 한 바퀴를 도니 소나무 한그루가 운치를 더하고 부도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옆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정표가 자적선사 능운탑비로 가는 방향을 가리킨다.

 얼마나 들어가야 되는 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일단 한번 들어가 보기로 결정하고 발길을 옮겼다.

 작은 소로를 따라 걸으면서 마주한 풍경은 기대하지 못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수 백 년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곳곳에 보이고 정돈되지 않은 숲의 느낌이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선물했다.

 한참을 걸어들어 가니 붉게 물든 나뭇잎이 자태를 뽐내고 자적선사 능운탑비가 전각 안에 있었다.

 고려 최초의 이두문자가 새겨져 있다는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을 보며, 천년의 세월을 견딘 무게감이 온 몸을 휘감아 돈다.

 천천히 경내로 돌아와 주지스님이 내놓은 따뜻한 오미자차를 마시며, 평소 다른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만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우리 지역에 있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에 대해 애써 외면했던 미안한 마음과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