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붉은 빛에 이끌려 복도로 나가니 저녁 노을이 봉덕산 너머로 아름답게 지고 있다.

 무지하게 아름답다. 넋을 놓고 한참을 쳐다봤다.

▲ 서산에 노을은 지고

 어른들은 붉게 물든 노을을 좋아하면 늙어가는 증거이니 젊은 사람이 좋아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걸 어찌할까!

 내 나이 마흔여섯, 30여년 전 만해도 중늙은이로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막걸리 잔이나 기울일 나이인데, 요즘은 원체 고령화가 심해 자칫 그리 했다가는 경을 칠 얘기가 됐다.

 젊은 사람보다 어르신들이 많은 우리 지역,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32%가 넘으니 46살은 아직 어린 나이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도 무거운 곳이 바로 우리 지역 예천이다.

 노인 인구 32%에 관내 등록 장애인이 11% 가까이 되니 전체 인구의 43% 정도. 거기에 초중고 학생이 약 5%,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여성들까지 더하면 실질적인 경제인구는 얼마되지 않는다.

 지역을 돌아보면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농업인, 상인, 직장인, 가정주부, 학생 각자 나름의 힘듦을 안고 살아간다.

 지난해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 주머니는 가벼워 지는데 내야 할 세금은 왜 그리 많은지.

 한마디로 삶은 고해(苦海)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요즘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1년 365일을 힘차게 달려도 매번 그냥 그 자리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미래를 위한 준비는 남의 얘기가 된지 오래다.

 어찌 살아야 하는지 정답은 요원하고, 세월은 어찌 이리 빨리 흐르는지 앉으나 서나 한숨뿐이다.

 그러하니 가슴속에 쌓이는 것은 사회적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고, 가진 자에 대한 반발심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꼬우면 출세하고 돈을 벌라고”.

 지역 안에서 모두가 출세하고 돈도 벌고 싶지만 남들처럼 어디에 빌붙지도 못하고 목소리 조차 크지 않으며, 얼굴가죽은 얇아 거짓말을 진짜처럼 못하니 그것이 문제다.

 어찌 살아야하나? 한쪽에선 신도청 시대가 왔다고 휘파람을 부는데 정작 대부분의 지역민은 고민만 커진다.

 외부 자본이 밀려오고 경쟁이 심해지면 경쟁력이 없는 지역민들은 틀림없이 더 구석으로 몰릴 텐데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르신 천지다. 삶의 끝자락에서 갈라지고 터진 굵은 손에 주름진 얼굴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대하면, 나의 미래를 보는 듯 언제나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그러나 힘들다고 옹알이를 한들 누가 알아줄까! 사회적 불만을 얘기한들 힘이 없으면 통하지가 않는다.

 누군가 잘 살려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이 들더니, 잘 죽는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니 모든 것이 평화롭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편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는 것이 어디 그러한가.

 사는 것이 전쟁이요, 아귀다툼인걸. 말 뿐인 성인군자가 되어 본들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이 저녁 붉은 노을을 보며 넋을 놓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은 아직 가슴 한켠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고 있어서는 아닐까!

 가슴은 답답한데 저녁노을은 정말 아름답다. 눈이 부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