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가을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부모님은 물론 일가친척, 마을사람 모두가 풍성한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총출동하는 잔치였다.

 우리들은 한달여 전부터 한천 백사장에서 집체훈련을 하고 덤블링에 곤봉, 훌라후프, 무용 등 곡예단을 옮겨 놓은 듯 갈고 닦은 솜씨를 십분발휘해 어른들을 즐겁게 했다.

 운동을 못하는 나는 정말 죽기보다 싫은 것이 운동회 날이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특별히 짜장면을 먹을수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세월이 흘러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축제 등 다른 볼거리가 늘어나면서 가을운동회는 기운을 잃고 추억속에만 존재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어린 초등학생 형제를 둔 아버지로서 가을운동회는 살짜기 가슴 설레이는 나만의 축제로 살아 숨쉰다.

 24일 모교인 예천초등학교 흑응어울림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가을운동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전체사회는 전문 mc가 맡아 진행했다.

 예전의 어릴적 뛰어놀던 플라트너스 나무와 낡은 교실이 잠시 추억을 돌아보게 한다.

 두 아들을 찾아 눈을 크게 뜨고 살펴도 도통 보이질 않는다.

 아이들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옆을 스치듯 다시 보니 둘째 놈이다.

 헤어진지 불과 1시간 30분 정도 지났는데 왜 그리 반가운지 알수가 없다.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이 달리기를 하는데 심장은 왜 뛰고, 손에 땀은 왜 나는지 주책이다.

 혹시나 넘어지지는 않을까!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가을운동회 날이면 무심한 듯 사람들 틈사이로 살며시 보이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도 나처럼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뛰고 손에는 땀이 고였을 것이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점심시간, 여기저기 먹거리가 넘쳐나고 피자, 치킨, 중국집 배달오토바이가 곡예하듯 오고간다.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느껴진다. 어제의 내 모습에 오늘 두 아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가만히 눈을 감고 교정에 앉아 있으니 무심한 듯 흐르는 세월의 한자락이 바람이 되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손등에 3등이라고 찍힌 파란 도장을 내 보이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