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아리랑은 살아 있다

참 나를 깨닫는 즐거움. 아리랑 예천e희망뉴스l승인2015.08.1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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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중에 하나를 꼽는 다면 아리랑을 우선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한국인의 정서는 물론이고 지역에 따라 지방색과 농민들의 애환과 삶의 무게가 그대로 실린 우리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중요성과 가치가 재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그 민족의 영혼을 사로잡는 노래는 있다.

 언제부터 누가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아리랑 민족이라고 불릴 만큼 지구촌 어느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든지, 아리랑 가락만 나오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고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리랑의 어원적 의미는 학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학설로 나뉘어 지는데 여기서는 철학적의미로 접근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세상 사람들은 아리랑이 단순한 남녀 사랑과 이별만을 노래한 연가(戀歌)로만 알고 있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게 된다.

 아리랑은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깊고 심오한 정신세계는 물론 민족의 한을 표현한 노래이기도 하다.

 굳이 풀이 해 본다면 '아리랑'은 '나 아(我)' '이치 리(理)' '즐거울 랑(朗)' 이다.

 진정한 나를 깨닫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참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여, 참 나를 깨닫는 즐거움이여"

 참 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인생에 어려움과 고비가 있다. 그 어려움과 고비를 '고개'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진정한 나를 깨닫기 위해 어려운 위기와 고비를 극복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참 나를 깨닫기를 포기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십'은 동양에서는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인 완성을 이루지 못하고 장애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참 나를 깨닫기를 포기하는 사람은 완성을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리랑 속에는 깨달음과 인간완성을 향한 순수한 열망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수천가지의 가사로, 가락으로 변형되어 입으로 몸짓으로 전래되어 왔지만, 인간의 진정한 의미와 삶의 가치가 담겨져 있기에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마음과 가슴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아리랑이 우리 예천에도 아름다운 사연과 함께 구전으로 이어져 오고 있고 노랫말이 환경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롭게 변해가는 모습들을 살펴보고 아리랑을 통해 새로운 문화 컨텐츠의 확장과 발전을 기대하면서 예천아리랑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예천아리랑 악보

 2. 예천아리랑의 특징과 유래

 1) 특징

 예천아리랑은 예천인의 혼의 소리이다.

 예천아리랑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강원도에 인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강원도 아리랑의 엇모리 장단과 메나리 토리의 경향이 가미되었으나 예천만이 가지는 강한 사투리와 투박스럽고 깊이 있는 언어에 맞추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중간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또한 경기민요의 경쾌함과 남도민요의 기운과 서도소리의 구성이 녹아 있는 매우 독특한 아리랑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고음에서 꺾는 듯한 표현에서는 경상도 민요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2) 유래

 ▷사별(死別)로 끝난 男女 사랑노래

 예천아리랑은 김도령과 처녀가 아리랑고개에서 정사를 나누어 임신을 한 후 몸실량 고개에서 몸을 풀었으나 김도령이 죽음으로써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몸실량 고개는 실제 지명이 아니고 아리랑 고개와 대척되는 상징적인 고개이름이다. 아리랑 고개의 ‘알’과 몸실량 고개의 ‘몸’이 대비되어 있다.

 예천아리랑은 우리 고장의 아낙네들이 힘든 농사일과 고된 시집살이의 일상생활을 하면서 고달프고 피곤할 때에 즐거움과 서러운 한을 콧소리로 흥얼거리던 소리를 며느리나 딸에게로 전해오면서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17세에 호명 직산에서 통명으로 출가를 해온 현재 96세인 양옥교할머니(2012,별세)의 말씀에 의하면 일곱 살 때부터 훗날 올케가 된 동네언니와 나물을 캐면서 부르기도 하였고 어린동생을 등에 업고 소리를 배우기도 하였으며 소리를 잘하시는 작은 오빠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였다한다.

 그 당시 아낙들이 가사를 지어서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분들은 또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부르던 노래를 배웠다하니 그 전통은 정확치는 않지만 꽤나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천아리랑은 원래 통명리에서 20여리 떨어진 예천군 호명면 직산리(속칭 피실마을)일대에서 불리어진 노래였음을 알 수 있다.

 양옥교할머니는 신혼시절에 남편을 일본에 징용으로 보냈는데 해방후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아 영영 생사를 모르자 하나뿐인 아들과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삯바느질로 연명해와서 ‘바느질 할매’로 불려져 왔다.

 양할머니는 헤어진 남편과의 사랑과 자신의 어려운 삶의 역정을 노래를 통해 해소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노랫말이 생기게 되었다.

 양옥교할머니의 삶과 노래는 일제침략기와 6.25를 거치면서 역사를 애끓게 살아온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공통적인 애환이며 지게 끝에 막걸리를 달고 막대기로 지게를 쳐가며 노래를 불렀고 갈구리치기로 힘들었던 나무하기를 잊으며 남녀노소가 불렀던 우리 지역의 민요이다.

 예천아리랑을 처음 발굴한 강원희선생에 의하면 개인으로 부르기보다는 주로 공동으로 집단으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예천아리랑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중요무형문화재 통명농요기능 보유자인 이상휴 선생이 젊은 시절 농사일을 하면서 틈틈이 불러오던 가사를 정리하여 불러오면서 일반인들에게 서서히 소개되었다.

 2008년 예천아리랑이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갈 즈음 예천군민들의 예천아리랑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이 예천아리랑 보존 전승 사업으로 이어지고 양옥교할머니와 이상휴의 원음 채취는 물론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게 악보를 채보하고 예천아리랑의 CD음반을 제작하였다.

 또한 젊은 소리꾼 장경자가 이상휴선생의 뒤를  이어 예천아리랑을 시대적 감각에 맞게 가사와 노래를 부르며 새로운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는 양옥교할머니와 이상휴선생의 뒤를 이어 장경자선생이 예천문화원에서 예천아리랑 강좌를 열어 약50여명의 교육생이 배출 되었으며 예천아리랑 창극공연과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20여년전 부터 예천민예총을 중심으로 예천아리랑제를 개최하는 등 민간차원에서 예천아리랑의 보전과 발전을 위해 전국적인 홍보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 이상휴 선생과 양옥교 할머니

 3. 예천아리랑 가사의 변천

 ■ 양옥교 할머니가 불러오던 가사

 1. 아리랑 고개서 알을 베어

 몸실량 고개서 몸을 풀어

 아리아리 아리아리 아라리야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요

 2. 남에집 영감은 인력거 전차를 타는데

 우리집 문디는 콩밭골만 탄다

 3. 일본아 동경이 얼마나 좋아

 울퉁 불퉁 나를 두고 왜 아니 오노

 4. 울타리 밑에다 칠성판 깔고

 호박잎이 난출 난출 날오라 하네

 5. 머리나 풀라니 남 남사시러

 비네야 소개야 흰 갑사댕기

 6. 디리고 디리고 디리고요

 느지막 나지막 반단자 비녀

 7. 홍당목 치매는 붉어야 좋고

 물명지 단속곳은 널러야 좋다

 8. 밀창문이 깔짝그면 나온다더니

 모두걸로 흔들어도 안 나오네

 9. 행주치매 똘똘말아 옆에 끼고

 본가장 가자할 때 왜 안갔노

 10. 느지막 나지막 반단자 비녀

 누구 간장 녹일라꼬 조조리 하노

▲ 예천아리랑 자필악보

 ■ 이상휴 선생이 부르던 가사

 아리 아리 아리 아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세

 1. 금년농사 못 짓는 것 후년에 짓고

 꼴두바우, 우구치로 돈벌로 가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얼었다가 녹아지면 봄철일세

 2. 세상천지 몯할 짓은 남우집 종사

 먹고 새면 일만해도 생짜정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생감자를 먹었는가. 왜 요리에리

 3. 일년에 열두달 남우집 살아

 다래밭이 공방주우 생짜정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새로 넘어가세

 4. 시어머님 잔소리는 설비성 갔고

 낭군임에 잔소리는 꿀맛과 같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세

 5. 친성살림 알뜰하면 네 살임대나

 말양풍이 후드대리 엿사먹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6. 날가라네 날가라네 날가라네

 삼배길삼 못한다고 날가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7. 어머님요 어머님요 네 배를 보소

 아들애기 낳을라고 벌렁벌렁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구 잘 넘어간다.

 ■ 장경자 선생이 부르는 가사

▲ 장경자 선생의 예천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나 잘 넘어가네

 1. 맑고 푸른 젖 줄 따라 기름진 들판 너와 나의 땀방울이 우리네 농촌

 2. 학가산 고운 햇살 송포 들녘 백두대간 내린 비는 내성천에

 3. 내성천 용틀임은 회룡포 돌고 금천 낙동 어우려져 삼강이라

 4. 예천이라 명승은 그 어디멘가 용문사 초간정이 그 시작일세

 5. 살기 좋은 내 고장 한맘으로 새천년 밝은 빛은 예천으로

 6. 너와나 어깨동무 덩실 춤을 흑응산 검독수리 사해로 웅비

 7. 골짝마다 굽이마다 절경이라 국사봉 푸르름이 장관일세

 8. 충무공 이순신은 나라를 구하고 정탁의 상소문은 충무공 구해

 9. 충신정탁 효자시복 우리의 자랑 자자손손 길이 길이 이어가리

 10. 도효자의 효성이요 지성이면 감천 한겨울에 수박이요 여름 홍시

 11. 유정수의 목동 피리소리 한천 밤 고기잡이 아름답다

 12. 현산의 저녘노을 한폭의 그림 비 개인 송대 언덕 산뜻하다

 13. 활의 고장 본향이요 우리의 유산 명궁사의 정신일도 세계로 향해

 

 4. 맺는 말

 ‘아리랑’의 ‘아리’란 의미가 ‘곱다’는 것과 ‘사무치게 그리운’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있고 ‘랑’의 뜻이 ‘님’이라 가정한다면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것은 곱고 사무치게 그리운 님과의 가슴아픈 이별을 뜻하는 것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아리랑’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또 우리들 가슴속에는 한(恨)의 노래로 자리 잡고 있다.

 예천아리랑도 언제부터 불리워지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입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져 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한 지금도 예천아리랑은 우리 예천인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우리 후세들도 아리랑을 통하여 삶의 위로를 받을 것이며 끊임 없이 부르고 이어갈 것을 믿는다.

(예천문화원 사무국장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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