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운부군옥의 저자 초간 권문해 선생

예천e희망뉴스l승인2015.04.15 20:11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예천이 고향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의 자(字)는 호원(灝元)이며 호(號)는 초간(草澗)이다.

▲ 선생이 저술과 심신수양을 했던 초간정

1560년(명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좌부승지·관찰사를 지낸 뒤, 1591년(선조 24) 사간(司諫)이 됐다.

일찍이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해 학문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등과도 친교가 두터웠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랄 수 있는 보물 제878호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20권 20책이 있다.

▲ 초간정 가는 길의 개울

이 책은 은나라 음시부의 '운부군옥'을 본 따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사실(史實)을 지리, 국호, 성씨, 효자, 열녀, 수령, 선명, 본명, 화명, 금명 등의 유목으로 총망라해 운자의 차례대로 배열됐다.

또 임진왜란이후 소실된 서적의 일면을 참고할 수 있어 서지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고, ’수이전(殊異傳)‘ 일문(佚文) 가운데 일부가 수록되어 설화문화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외 1580년부터 11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국정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일들을 기록한 '초간일기(草澗日記)'(보물 제879호)를 남겼으며, 아내가 세상을 뜨자 90일장을 지내면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아 아내에게 바친 제문도 유명하다.

예천 봉산서원(鳳山書院)에 배향(配享)됐다.

▲ 초간정 앞 팔베게를 하고 누운 소나무

■ 초간일기(草澗日記)

 1580년(선조 13)에서 1591년(선조 24)까지 11년간에 걸쳐 일상의 개인적인 일에서 국정의 대요(大要) 등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일기로, 3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1986년 10월 15일에 보물 제879호로 지정되었다.

 이 일기는 저자인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상세히 적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중앙의 관료직과 지방관을 지내면서 직무수행에 관한 여러 문제를 다뤄 조정에서 일어난 일은 물론 지방관아의 기능과 관리들의 생활, 당쟁관련 인물 및 정치, 국방, 사회, 교육, 문화, 지리 등 전반에 걸쳐 살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다.

 임진왜란 이전 관료가 쓴 일기로서 다 타고 없어진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적 자료를 보완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이러한 것으로는 권벌의『충재일기』, 유희춘의『미암일기』가 있는데, 각기『실록』편찬자료로 채용되기도 하였다.

 이 책의 표제는 『선조일기(先祖日記)』·『초간일기』·『신묘일기(辛卯日記)』 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선조일기: 1580년(선조 13) 11월 20일에서 1584년(선조 17) 7월까지 5년간의 일기이다. 저자가 공주목사, 삼사(三司)의 관직에 있을 때의 기록으로, 일상 생활에서부터 당시 경향 각 관사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일들을 상술하고 있다. 그 밖에 동료나 친구들과 왕복한 시문이나 조야(朝野)의 소(疏)·차(箚)·계(啓) 및 국왕의 전교·비답 등도 전재해 그 내용을 더욱 충실히 하였다. 책명은 후손이 붙인 것이다.

 ② 초간일기: 1580년 11월 20일에서 1590년 4월 6일까지의 일기이다. 다만, 1580년 11월부터 1584년 7월까지의 일기는 『선조일기』를 정서한 것이다. 이는 저자가 초고본의 일기를 재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 형식은 『선조일기』와 비슷하나, 행서체로 쓰여지고 체재가 비교적 정연한 점이 다르다.

 ③ 신묘일기: 1591년(선조 24) 7월부터 10월 6일까지의 일기인데, 중간에 결기(缺記)가 더러 있다. 저자가 승지로 재직할 때의 기록으로, 국정에 관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 대동운부군옥

 한중 두 나라의 문헌 중 단군시대로부터 편찬 당시까지 우리 나라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 등을 총망라하여 운별(韻別)로 분류해 놓은 책이다.

 책명에서 ‘대동(大東)’이라는 말은 ‘동방대국(東方大國)’이라는 뜻이고, ‘운부군옥(韻府群玉)’은 운별로 배열한 사전이라는 뜻이다. 원나라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이 중국의 역사 기록을 수록하여 엮은 것에 대하여, ≪대동운부군옥≫은 우리 나라의 운별 사전임을 밝힌 것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저자가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인 1589년(선조 22) 20권 20책으로 편찬을 완료하고, 세 벌을 정서해 두었다.

 그 중 한 벌을 1591년 부제학 김성일(金誠一)이 선조에게 어람시킨 뒤 간행하려 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본을 잃어버렸고, 또 한 벌은 정구(鄭逑)가 빌려갔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뒤 저자의 아들 별(鼈)이 정산서원(鼎山書院) 원장으로 있을 때 남은 고본에 의해 한 벌을 정서하여 그 서원에 보관하였다.

 그 뒤 1798년(정조 22) 7세손 진락(進洛)이 정범조(丁範祖)의 서문을 받고, 1812년(순조 12)에 간행을 시작하여 1836년(헌종 2)에 완간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복판되었는데, 현전하는 ≪대동운부군옥≫의 초간본은 희귀하다.

 현전본 가운데 신석호(申奭鎬)의 구장본을 초간본으로 본다.

 동일 판각의 후쇄본으로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만송문고본(晩松文庫本)을 든다.

 [내용]

 체재는 음시부의 ≪운부군옥≫과 같이 총 20권으로 분류되어 있고, 권1의 권두는 정범조의 서(序), 김응조(金應祖)의 발, 홍여하(洪汝河)의 부(附) 해동잡록발(海東雜錄跋), 목록(目錄)·유목(類目)·범례(凡例)·찬집서적목록(纂輯書籍目錄) 등으로 되어 있다.

 전체의 구성은 평성(平聲) 30운, 상성(上聲) 29운, 거성(去聲) 30운, 입성(入聲) 17운의 총 106운으로 나누어져 있다. 분량은 총 1,232엽으로, 면수로 따지면 2,464면이다.

 ≪대동운부군옥≫의 목록은 ≪운부군옥≫과는 달리 유목에 지리·국호·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守令)·선명(仙名)·목명(木名)·화명(花名)·금명(禽名) 등 11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효자·열녀항이 더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매한자에 반절음(反切音)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이 ≪운부군옥≫과 다르다.

 내용의 구성은 제1운인 동운(東韻)에서부터 시작하여, ‘동(東)’의 뜻을 2행 협주(夾註)로 달고, 이 ‘동, 자를 끝자로 한 숙어(熟語)를 나열하면서 각기 협주와 그 협주의 출전을 밝혔다.

 그 다음은 같은 방법으로 이 한자가 딸리는 지리·인명 등의 유목을 음각(陰刻)하여 쉽게 눈에 띄도록 표시하고, 역시 2행 협주를 달았다.

 매엽 1면은 10행으로 되어 있고, 운자와 숙어를 제외한 협주는 모두 잔글씨로 1행에 20자씩 두 줄을 넣었다.

 매숙어의 끝자로 쓰인 한자의 수는 총 6,100여 자이며, 그 한자의 국어음을 나누어 보면, 약 500종이나 된다.

 이 책에 인용된 서적을 권두의 ‘찬집서적목록’에서 보면, ‘중국제서(中國諸書)’라고 하여 ≪사기≫·≪한서 漢書≫ 등 15종이 실려 있고, ‘동국제서(東國諸書)’라 하여 ≪삼국유사≫·≪계원필경 桂苑筆耕≫ 등 174종이 실려 있다.

 그러나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 高麗圖經≫과 명나라 동월(董越)의 ≪조선부 朝鮮賦≫를 동국제서에 넣은 것은 잘못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임진왜란 이전의 우리 나라에 관한 일들을 방대하게 수집한 백과사전으로서 가치가 높으며,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서적의 일면을 참고할 수 있어 서지학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수이전 殊異傳≫ 일문(佚文) 가운데 일부가 수록되어 있어 설화문학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운부군옥≫은 1913∼1914년 사이에 최남선(崔南善)이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활판본으로 제1∼9권까지 분책, 간행하다가 중단한 바 있다. 신석호가의 소장본은 1950년 정양사(正陽社)에서 색인을 붙여 단권 양장본으로 영인하였다.

 초판본의 판목(板木)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금곡리 권문해의 후손 권영기(權榮基)가 보관하고 있다.

 ■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醴泉權氏 草澗宗宅 別堂)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간 권문해(1534∼1591) 선생의 할아버지 권오상 선생이 지었다고 전하는 건물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대청마루고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온돌방은 다시 2개로 나뉘어 있다.

 대청 앞면은 문짝 없이 열려 있지만 옆면과 뒷면은 2짝 널문을 달았으며 집 주위로 난간을 돌려 누(樓)집과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겉모습은 대체로 소박한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안쪽은 천장 부분에 설치한 여러 재료들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하여 호화롭게 꾸미고 있다.

 별당 뒤 야산 밑 서고에는 권문해 선생이 쓴『대동운부군옥(大東韻部群玉)』의 판목 677매와 14대째 전하는 옥피리,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전질 120권을 보존하고 있다.

 일반 주택건축으로는 보기 드물게 건물 안쪽을 장식하여 꾸민 수법이 뛰어난 조선시대 별당 건축이다.

 보존 상태가 우수한 조선 중기 건물로 조선 건축의 구조와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별당채는 잡석으로 높이 쌓은 축대위에 세우고, 중간 앞에 여러 단의 축석을 쌓아 건물 전체가 매우 높고 웅장하며 고졸한 멋을 풍긴다. 보물 제457호로 지정돼 있다.

▲ 초간정 정문
▲ 초간정 앞 팔베게를 하고 누운 소나무

예천e희망뉴스  webmaster@ycehn.net
<저작권자 © 예천e희망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예천e희망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인기기사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경북 예천군 예천읍 효자로 70 (세종프라자 2층 203호)  |  대표전화 : 010-2522-0071  |  팩스 : 054)652-0503
등록번호 : 경북 아 00359  |  발행인/편집인 : 장희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희정  |  등록일 : 2015년 4월 8일
Copyright © 2020 예천e희망뉴스. All rights reserved.